늦은 2014 사운드 베리 크리스마스 후기 보고 듣고 느끼고


감격스러운 나머지 페북에는 살짝쿵 올렸지만 어떤 목적성(?) 때문에 때늦은 공연 후기를 올리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나의 영원한 공연 메이트 MJ와 함께 택한 연말 공연은 사운드 베리 크리스마스였다.

왼쪽은 24일, 오른쪽은 25일의 라인업. 25일에도 애정하는 아티스트들이 많았지만 24일을 선택한 이유는 순전히 언니네 이발관 때문이었다. 우린 원래 연말 공연으로 언니네 이발관 단독 공연을 택했었다. 그런데 사운드 베리 크리스마스 공연 소식을 접하고는 갈등하다, 다른 가수들의 공연도 같이 보는 방향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어쨌거나 우리의 본래 목적은 언니네 이발관을 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24일로 예매했다.
공연은 63 컨벤션 센터에서 진행되었다.

집이 멀어서 막차를 생각해야 하는데 우리의 목표였던 언니네 이발관이 첫 순서라서 천만 다행이었다. 하지만 우리들의 오랜 오빠들, 데이 브레이크는 대미를 장식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포기해야만 했다. 데브 오빠들은 그동안 이래저래 자주 봤고 단공이 아니면 부를 곡들은 뻔할 것(ㅋㅋㅋㅋㅋ)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했다.

언니네 이발관이 등장한 순간.. 꿈만 같았다. 인디 조상님들의 라이브를 직접 본다니.... 감격에 젖었다. 그런데 관객들의 반응이 예상보다 너무 조용했다. 인디 매니아들로 가득 찬 공연장에 익숙해진 우리는 소리를 지르다가 민망을 느꼈다. 게다가 언니네 이발관 자체도 너무 조심스러워 했다. 데뷔 20년차지만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라고 조심스럽게 자신들을 소개했다. 처음엔 농담조로 한 말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이 이 공연의 정체성을 알았던 것일까...? 사운드 베리 크리스마스는 우리와 같은 인디 빠들을 위한 공연이 아니라 애정어린 커플들로 가득한 크리스마스 축제였던 것이다. 껴안고 음악을 즐기는 커플들이 우리를 에워쌌다. 나와 MJ는 엄청난 호응을 선사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으로 인디 조상님들께 박수를 보냈다. 커플들의 기운에 눌려서 그런지 사진이 없네...

이어서 슈가 볼이 등장했다. 보컬 고창인이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한 소절을 부르자마자, 뒤에서 연인과 함께 하고 있던 어떤 남정네께서 "그래, 밴드 보컬이 이 정도는 해야지." 했다. 갑자기 분노가 치솟기 시작했다. 나에겐 그 말이 언니네 이발관을 비하하는 것으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물론 언니네 이발관을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개인의 취향이 있기 때문에 훌륭한 뮤지션이라고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내 생각에는 적어도 이 공연에 올 때 다른 뮤지션을 배제하고 오지는 않았을 것 같다. 또한 보컬 이석원이 엄청난 성량을 가졌거나 뛰어난 가창력을 지닌 가수는 아니다. 하지만 음악이 단지 보컬의 가창력으로만 결정된다고 할 수 있을까? 소름끼치는 가창력이 감동을 가져다 줄 수 있으나, 그것만이 감동의 전부는 아니며, 음악성을 판단할 척도도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언니네 이발관은 국내에 모던락을 처음 들여 와서 정착시킨 국내 모던 락의 효시라고 할 수 있으며, 그들의 5집은 트랙이 유기적인 관계를 이루는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명반이다. 수많은 평론가에게 극찬을 받으며 한국 대중 음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암튼 그 이름만으로도 엄청난 존재감을 자랑하는 명불허전 국내 최고 인디 밴드인데 못 알아보는 그 사람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적어도 남 귀에 들리게 말하지는 말지.... 지나가는 말에도 울컥하는 나를 보며 내 자신이 덕후임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잠깐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슈가 볼의 음악은 그런 마음을 눈 녹듯 사라지게 하였다. 음악들이 어쩜 그렇게 다 달달한지. 밴드 명이랑도 너무 잘 어울린다. 그리고 그들의 음악이 여타 다른 국내 인디 음악들보다는 대중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긴 했으나, 떼창 하는 사람들을 보며 슈가 볼 참 잘나가는구나~~ 싶었다.

이어서 디어 클라우드가 등장했다. 내 친구는 디클을 사랑하는데 나는 그러지 않았다. 이유는 보컬 때문이었다.―나는 밴드에서 건반과 기타를 친 경험이 모두 있어서 세션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런데 대중의 입장에 설 때 좌우되는 건 별 수 없이 보컬의 영향력 아래서인가 보다.
여느 독립 음악을 처음 접할 때와 마찬가지로, 디어 클라우드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도 멤버가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는커녕 노래 부르는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다. 우선 음악은 전적으로 내가 딱 좋아하는 류의 모던 락이었다. 하지만 보컬이 허스키한 것은 좋았으나 간간이 들리는 코 먹는 듯한 발음이 좀 거슬렸다.―그저 개인적인 취향임을 알려드립니다.― 친구가 디어 클라우드를 너무나 좋아하여 앨범 전집을 들어보았는데도 그 이유만으로 별 감흥이 오지 않았다.
그런데 디어 클라우드, 특히 보컬인 나인이 등장하자, 굉장한 아우라에 압도되었다. 요즘 디어 클라우드가 일반 대중에도 많이 유명세를 타고 있으며, 나인은 라디오에도 출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긴 했다. 그런데 트위터에서 사진으로만 봤던 나인 언니는 사진에서처럼 보이시하지도 않았고, 그냥 엄청나게 예뻤다. 단지 예쁘다는 말로 표현하기에 부족할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연예인 같았다.(ㅎㅎ) 사진에 보이는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정말 잘 어울렸다. 음악이 시작되었고, 나는 발음을 거슬려하던 내 자신이 창피했다. 라이브가 훨~씬 좋았다. 음악을 온 몸으로 즐기며 표현하는 나인 언니는 그냥 마성의 여자였다. 남자들 뿐 아니라 여자들도 열광할 수밖에 없는 매력이었다. 시원시원한 가창력과 내가 딱 좋아하는 모던 락을 하는 디어 클라우드의 공연은 참 인상적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서 있느라 지쳐서 다음 순서인 로맨틱 펀치 공연은 구석진 곳에 위치한 좌석에서 봤다. 사실대로 말하면 로맨틱 펀치의 음악은 내 취향을 조금 벗어난다. 그런데 그들 또한 관객을 휘어 잡는 힘이 대단했다. 관객석의 열기가 앞선 공연보다도 엄청났다. 우리도 소리 몇 번 지르다가 막차 시간이 다 되어 아쉬움을 뒤로한 채 컨벤션 센터를 나왔다.
다음엔 누구를 보며 감격에 겨워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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