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셋이 되었다.
물론 이제 갓 스물 셋이 된 것도 아니고, 무려 두 달도 넘게 지났다. 한 친구는 스물 셋이 멀고도 멀어 보였던 스물 둘 초중반 시절부터 그토록 스물 셋, 스물 셋, 노래를 불렀으나, 내겐 특별한 나이로 다가오지 않았다.
헌데 이상하게도, 고작 나이 몇살 먹어서라기엔 수많은 변화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짧고 스타일리쉬해 보이는 머리를 원했다면― 곰곰이 생각해보니 딱히 그런 머리를 갖고 있진 않았던 것 같지만, 지향하는 것만은 항상 스타일리쉬였던 것으로.―, 올해 들어 왠지 여성스러워 보이는 긴 웨이브 머리를 하고 싶어졌다. 비록 지금은 외국 생활로 인한 강제 생장발―예뻐 보이는 말로는 긴 생머리―을 유지하고 있지만―물론 이곳에서도 머리를 할 수 있으나, 지지리도 못하고 가격만 비싸다고 유학생들 사이에 소문이 자자하다.―, 작년까진 돌아가면 무조건 단발을 하겠다, 벼르고 있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그 마음이 스물 셋이 됨과 동시에 바뀌었다.
뿐만 아니라, 옷 입는 스타일도 손을 좀 보고 싶어졌다. 많은 이들이 내 스타일이 내 자체를 아주 잘 보여준다고 했는데, 이것까지 변화를 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도전해본 적 없는, 여성스럽고 섹시한 스타일로? 이건 그동안 너무 몸뚱이를 감추고 살아서 좀 다듬은 뒤 어느 여성들처럼 뽐내볼까, 하는 욕망도 다소 섞여있다. 나도 이제 "어딜 봐도" 여성, 여성, 여성이 되고 싶었나보다.
아이러니하게도, 여성스러워지고 싶다고 해서 꾸미는 것에 대한 욕망이 점점 커지기만 하는 건 아니었다. 귀찮음과 합리적인 선택을 오롯이 내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집착하던 눈화장을 쿨하게 보내주었다. 그 과정도 참 집착스럽게 단계적이었다. 연하게 하다가, 섀도우를 포기하고, 마스카라만은 놓을 수 없어, 하다, 영국에선 잘 지워지는 립 앤 아이 리무버를 구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 뷰러만 하고 다니자, 타협했지만 속눈썹이 빠지는 관계로 모든 것을 깨끗이 내려놓았다. 그러더니 이젠 틈만 나면 생얼로 누빌 기회를 노리고 다닌다.
다행인 건 이 나이가 정신적인 성숙에까지 영향을 끼치려나보다. 어이 없게도 문득 짐에서―우리나라에서 흔히들 헬스라고 부르는 헬스장, 난 헬스가 건강을 뜻하기에 여기 영국에서 말하는 대로 짐이라고 한다. 지인이 이 말에 대해 약간의 우스움과 불편함을 내비쳐 이 단어를 순수 한국인을 대상으로 쓸 때마다 불특정 다수의 눈치가 보인다.― 샤워를 하고 나오다 생각이 들었다. 요새 내 마음이 참 편안해지지 않았나 하는. 사실 얼마 전 풍파가 찾아 온 적이 있었는데, 아무리 외부 환경 탓을 할 수 있어도 동시에 거기 명백한 내 책임이 있었다. 그동안은 있는 모든 원인을 찾기에 급급했고, 도무지 아무것도 내 맘대로 되지 않으니까 결국엔 내 책임을 받아들이는 것마저 포기했다. 쳇바퀴 돌듯이 언젠가는 상황이 또 찾아왔다. 촉으로도 나를 내려놓아야 이것이 해결되겠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난생 처음 굳게 마음을 다잡았다. 그날은 너무 힘들고 마음이 아팠다. 고통을 주는 것에도, 받는 것에도 내가 있었다.
지금도 근본적인 원인이 나에게만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더 중요한 건 어쨌건 내게 책임이 있긴 있다는 것이었다. 이걸 받아들이고 그나마 가장 바꾸기 쉬운 나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자고 내 나름대론 독하게 마음 먹었다. 처음엔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인정하고자 했던 내 자신이 오해 받는 것만 너무 힘들었다. 정작 하는 일은 없이 온갖 손에 넣을 수 없는 것까지 집착했고, 그것은 아무것도 나아지게 만들지 못했다. 끊임없이 나를 괴롭힐 뿐이었다. 그런데 나에게만 집중하고 나니 모든 것이 편해졌다. 예민병을 고쳐가는 중이다. 물론 타고난 촉은 어쩔 수 없으나, 이번엔 왠지 자신있다. 너그러움에 한 발 다가간 것 같다. 지금도 짜증나는 상황에 마주할 때 순간 무엇이 훅 올라오는 경우도 있으나, 결심을 다지고 나면 눈녹듯 사라진다. 세상에 짜증날 일이 별로 없다.
물론 아직 멀고 멀었다는 것을 잘 안다. 결심한 것이 이것 하나 뿐이 아니기에 해야 할 일이 많다. 하지만 인간의 성숙을 판단하는 것은 수직이 아니라 수평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로썬 벌써부터 많은 기대가 된다. 다시 말하자면, 나이가 60이라고 해서 성숙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의 일대기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라는 사람의 스물 셋에 무언갈 깨닫고 변화를 시도함은 의미가 크다. 내 삶을 돌아보는데 이어 나머지 삶에 대한 기대까지 불어준다.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내가 왜 살아야 하는가를 얼마나 외치고 외쳤던가. 정답을 찾고 싶었지만, 태어났다는 이유로 힘겨운 삶을 이어가야 하는 의구심이 끊이지 않았었다. 그 의문은 완벽한 과거형이 되었고, 답은 다름 아닌 내 손에 달려 있었다.
희망찬―왠지 모르게 오그라드는 이 말은 클래식 음악의 희망찬 부분을 묘사하는 데에만 사용될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3월의 어느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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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2 10:36 # 삭제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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