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을 가장한 불평의 시간 접시




1. 산뜻하게 몰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여행이 끝났어도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애초부터 달라질 것이 없었다. 흔히들 말하는 것처럼 여행 후 마음가짐이 달라졌긴 했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20여년 인생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몸 상태가 최악이다. 마음가짐이 달라졌어도 그 중요한 건강이 안 따라준다는 것. 건조하고 예민한 라섹 수술한 눈과 초등학생 때부터 휘어있던 척추는 이미 익숙해진지 오래였는데, 요새 턱관절이 심하게 안 좋아서 입 크게 벌리는 것도 어렵고 매일의 두통까지 유발하고 있다. 거기다 스쿼트를 시도한 게 문제였는지, 그 이후로 무릎 관절이 전보다 더 삐걱거려 짐에서 운동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추위는 몇년 전부터 예전에 엄마가 아팠을 때처럼 심하게 타는 중이다. 예민한 데다가 엄마가 건강 염려증이나 의심해보라고 할 정도로 건강을 소홀히 하는 편이 결코 아닌데 내 몸뚱아리는 왜 이렇게 내 맘을 몰라주는 것일까. 매일 골골대고 다닐 정도는 결코 아니고, 놀러 나가면 밤새 놀 수도 있는 정도인데 ― 실제로 날밤 깐 적은 거의 없다는 것과 요샌 그 나름의 밤샘마저 피곤하여 밤을 새서 하는 파티는 필사적으로 피해다닌다는 것도 함정 ― 여러 부위에서 상태 안 좋다 아우성 대니까 누구 말대로 종합병원 같다. 잠을 7시간이라도 챙겨자다가 너무 많이 자나 싶어 5, 6시간으로 줄였던 것도 근래에는 더 많이 자 주고, 밥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잘 먹는다. 끼니는 무조건 챙기는 것이라는 모토는 우리 가족의 비공식적인 또 다른 가훈이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초콜릿을 좋아하는 우리 남매가 걱정돼 아빠가 가족 카톡방에 "단거, danger"이라는 네이버 캐스트 링크를 보내주신 걸 보고, 자극받아 요샌 그마저 섭취하던 군것질 거리도 멀리하는 중이다. 짐을 가지 않는 날 몸이 찌뿌둥하면 요가도 해주고, 인공눈물도 하루에 하나는 꼭 써 주고, 웬만하면 무조건 약부터 찾지 않고, 물도 남들보다 많이 마시고, 운동도 열심히 하려고 짐도 꾸준히 다니는데 내가 대체 무엇을 그리 잘못했던가. 아이러니한 건 이곳에 온 지 무려 8개월이 지났지만 감기는 한 번도 걸리지 않았다. 관절들만 내 나이를 뭘로 알고 있어서 날 이리 괴롭게 하는지. 이렇게 억울할 수가 없다. 오죽하면 이걸로 일기를 쓰겠어. 하지만 난 나의 좋지 않은 습관들이 이렇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긴 하다. 이 지경이 돼서 몸에 나타나니까 그런 행동들이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구나 깨달았다. 그 습관들은 불확실하다는 이유만으로 비밀.

2. 일기에 사진을 첨부하지 않으면 굉장히 허전하다. 그런데 첨부할 사진이 없다. 새로운 사진은 많지만 그림일기 ― 혹은 사진일기 ― 에 쓸 사진이 없다. 음식 사진은 먹부림 포스팅에 써야하고, 여행 다녀온 것은 무조건 여행기 용이고, 그 외는 웃긴 것 캡쳐나 예쁜 사람들 사진. 내 사진들이 고작 이렇게 네 종류로 분류되다니. 실은 하나 더 있는데, 내 사진이다. 셀카든 뭐든. 오늘 짐 탈의실에서 아무도 없을 때 찍었는데 그런 걸 블로그에 올리는 일기에다 쓸 수는 없는 것 같다.

3.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웬걸, 시험 폭탄을 맞았다. 아무리 어학원생이라도 정기적인 시험이 있다. 선생이 까다로운 편이라 매주 progress test를 보고, 학원생 모두 함께 보는 monthly test가 있다. 그걸 돌아온 바로 직후인 화요일, 수요일에 연달아 보다니, 난 시험 복이 "매우" 터진 여자이다. 벌써 8개월차이기 때문에 8번은 아니지만 5번 이상은 본 monthly test, 처음으로 writing task를 완성하지 못했다. 쓰기는 아이엘츠Ielts 유형이었고, 이미 아이엘츠 시험을 접해본 나로선 많이 어려운 과제는 아니었다. 내가 에세이 작성에서 꾸물댈 것을 예상하고 다른 과제를 누구보다 빨리 마치고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오늘따라 중간중간 멍 때리기도 많이 하고, 흐름이 계속 끊겼다. 사실 가장 큰 문제는 쓰기 전에 적어 놓았던 근거들이 주제와 약간 동떨어져 있던 것이다. 주어진 주제에 관하여 얘기하자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으나, 연결고리가 필요한 조금은 다른 얘기였다. 가끔 정확히 주어진 주제에 관한 얘기만 나와야 할 상황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각이 곁가지를 치고 갈 때가 있다. 그나마 아예 바보는 아닌지라 나중에라도 아, 내가 곁가지를 쳤구나 알아차리지만, 오늘은 차라리 끝까지 모를걸 그랬다. 바보같은 내용이라도 다 채우지 못한 게 지금까지도 마음에 걸린다. 여기서 완벽주의의 난점 ― 모든 완벽주의자를 싸잡아서 욕되이 하자는 의도는 아니었고, 내 안에 있는 완벽주의 기질이 가지는 난점, 정도로 말할 수 있겠다. ― 을 볼 수 있다. 어차피 시간도 촉박하기에 완벽하게 작성하지 못할 바에야 미완성으로 남기겠다는 다소 불성실해 보이는 마인드. 학창시절에도 종종 경험한 순간들이었다. 이래서 하고 나서 후회하는 게 낫다는 말이 있나보다. 다음은 더 낫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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