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1월 24일의 연장선에서 접시


1.  위 사진은 스코트랜드 전통 음식인 하기스Haggis. 가운데 있는 까만 음식이 하기스이고, 위쪽은 으깬 감자, 밑에 있는 건 아마 으깬 콩일 것이다. 영국인들은―특히 스코트랜드 사람들은, 이겠지만, 내가 사는 곳인 버밍엄 주변에서도 번스 나이트를 기념하여 하기스를 판매하는 음식점들이 많았다.― 1월 25일인 번스 나이트Burn`s night―스코트랜드 국민 시인으로 추앙받는 로버트 번스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 이 전통음식을 먹는다. 대화 수업 선생님한테 설명을 들었으나, 편의상 두산 백과를 참고하면,

양이나 송아지의 내장을 잘게 다져서 향신료로 양념하여 오트밀과 섞은 뒤 원래 동물의 위(胃)에 넣어 삶은 스코틀랜드요리. 

[네이버 지식백과] 하기스 [Haggis] (두산백과, 두산백과)


어쨌거나, 이 특별한 날 덕분에 친근한 몇 선생님들이 모임을 주최했다. 어학원 학생들과 함께 학원 근처 펍Pub으로 하기스를 먹으러 가는 것. 대충 얘기를 듣자하니 순대가 생각났으나 이런 독특한 음식일수록 위험을 감수하는 건 좋지 않다고 판단되었다. 결국 나는 닭가슴살 버거를 먹었다. 영국에서 그 흔한 칩스도 아닌 샐러드가 그 자리를 대신한 다이어트―다이어트라고 하기엔 버거가 그리 알맞은 음식이 아닌 것 같다. 먹고 싶었던 핫도그의 칼로리가 약 1000 정도여서 엄두가 안나서 500 칼로리 이하 메뉴에서 하나 골랐다.― 메뉴였다. 항상 테네시 버거Tennessee Burger를 먹어왔어서 다른 메뉴는 맛 없을까 겁이 났다.―이러나 저러나...― 웬걸, 굉장히 맛있었다. 역시 웨더스푼Wetherspoon 펍―영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펍. 정확히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모르지만, 프렌차이즈 같은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름이 웨더스푼이 아니어도 메뉴와 가격은 거의 그대로이다.―의 음식은 대체적으로 중간은 넘는 것 같다.

용감한 터키 숙녀 두 명은 과감히 하기스를 주문했다. 나도 맛 보았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다 먹으면 어쩔지 장담할 순 없지만 말이다. 순대나, 하몬Jamon 등 내가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던 다른 음식과는 확실히 다른, 처음 시도해보는 맛이었다. 듣자하니 리비아에도 엇비슷한 전통 음식이 있었다. 모두들 동물의 내장을 이용한 요리라고 하면 다소 역겹다는 반응을 보이지만, 결국은 다들 그렇게 먹고 산다.

사실 이건 어제의 일기.

2. 이제부터 오늘에 관해 얘기해야지.

또 하나의 진리를 깨달았다. 꽃단장을 한 날에 외출을 하면 아무런 중요한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 심지어 거울에 비친 나는 오늘 그나마 좀 괜찮은데, 사진 찍으면 징하게도 못생기게 나온다. 화장 잘 먹은 것도 아까워 죽겠고 오늘 난 괜찮아서 기분도 좋은데 특별한 약속도 안 잡히고, 아무런 일 없이 무난한 하루가 흘러간다. 반면, 설마 별 일 있겠어, 하고 꼬질꼬질하게 나온 날은 많은 사람들을 우연히 만나고, 많은 일이 생긴다. 심한 경우 중고등학교 동창을 만난다. 이건 구남친을 만나는 거랑 맞먹거나 어쩌면 사람에 따라 더 심각한 일일 수도 있을 거다. 연락이 끊긴 동창에게 그 모습은 그냥 내 근황 그 자체일 것이다. 구남친은 꽃단장한 걸 매일 같이 봤으니 그나마 낫지. 다행히 난 영국이기에 그럴 걱정은 덜 하지만, 결국은 그런 안일함이 오늘의 실수를 만들었다.

내 얼굴의 치부를 드러내자면 아이브로우 없이 외출이 불가능한 것? 지금도 이십대 초반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이십대 아주아주 초반에는 바쁜 나날에도 아이 메이크업에 목숨을 걸었다. 여기 와선 모두 놓았지만, 최소한의 예의로 아이브로우는 포기할 수 없다. 아무래도 눈썹 문신을 하기 전까지는.

근래 약속이 많아 집에서 개인적인 할 일을 할 시간이 없었고, 파티에도 좀 권태를 느끼던 참이었기에, 친구의 손길을 무참히 뿌리치고 운동이 끝난 후 집으로 바로 직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수업이 끝나자마자 오랜만에 볼 수 있게 된 친구의 연락을 받고 뿌리칠 수 없어서 흔쾌히 약속을 잡았다. 짐Gym에 도착하자마자 준비성 철저한 내가 오늘은 아무런 화장품도 챙겨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맨얼굴 노출보다 문제인 건 아이브로우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목 위는 철저히 보호해주기로 하고 대단한 스킬로 고정 샤워기가 설치된 부스에서 샤워를 마쳤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외국인 친구들과 얘기를 나눠본 결과, 이틀에 한 번이 대다수였다. 그들은 매일 머리를 감는 것이 두피에 좋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머리란 매일 감는 것. 찝찝했다. 집에 가고 싶었다. 그래도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약간은 보수적인―그들이 재미 없는 사람들인 건 절대 아니다.― 리비아 친구들 두 명이 먼저 떠나고, 스페인 친구와 나는 펍에서 한 잔 하고 가기로 했다. 한 시간만 더 머물자 했던 시간이 두어시간 금방 흘렀다. 대화의 끝자락에 있다 생각할 때 즈음, 파티를 제안했던 학원 친구들이 몰려왔다. 수많은 펍 중에서 어떻게 우리가 있는 펍에! 터키 친구는 제대로 꽃단장을 했다. 그 옆의 나는 후드에 운동화에―한국에서 내 나름으로 꾸밀 때도 운동화를 매치하는 편이긴 하지만― 머리도 안 감은 퀭한 생눈의 추리한 아시아 여자 사람일 뿐이었다. 그래, 이런 날은 왜 더 재미있는가. 내가 나오기 전 사진을 찍자는 제안이 없던 건 불행 중의 다행이었다.

3. 언어를 배우는 상황에 있어서 더 그런지 몰라도, 요새 부쩍 남의 말 들어주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다. 하지만 대부분은 모두 자신이 굿 리스너―어색하지 않게 어떤 말로 대체할 수 있을까. 주의 깊에 들어주는 사람? 경청하는 사람? 더 짧고 멋진 단어 없을까. 모든 건 내 부족한 어휘력을 탓하겠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는 굿 리스너가 잘 들어주는 동시에 적절한 리액션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난 의외로 예민한 편이고, 감정이 만드는 미묘한 행동의 차이를 잘 잡아내는 재주(?)가 있기 때문에 대체적으론 상대가 내 말에 얼마나 집중하는지 알 수 있다. 단정지을 순 없지만, 이 덕분에 리액션의 진정성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 것 같다.―이쯤 되면 정말 무서운 사람이거나 허풍쟁이거나. 뭐 그저 내가 생각하는 나일 뿐이다. 사실과는 무관할 수도.― 진정성 없는 리액션을 하거나, 적절한 반응이 필요한 상황에서 아무 말 없이 다시 자기 이야기로 돌아가는 상황이 나에겐 불쾌하다. 내가 모가 나고 까다로운 사람일진 몰라도, 그들과 더 이상의 깊은 대화는 이어가기 어려운 것 같다. 마지막은 자아성찰로 마무리-

나는 경청하는 사람일까. 그랬을까?

4. 무난히 좋아했지만 특별히 대단한 애정을 갖지 않았던 듀오, 루싸이트 토끼의 소품집이 나왔다. 단 두 곡이 수록돼있다. 개인적인 입맛에 딱- 한 눈에 반할 스타일이었다. 단 두 곡 중에도 있는 타이틀곡 <Tibi>가 아직도 귀에 맴돈다.

5. 요새 재미난 일이 많아서 몇자 끄적이려고 했던 게 이만큼 커져서 내딴엔 중대형 포스팅이 됐다. 영국 시간은 2시를 향해 가고 있다. <응답하라 1994>도 다 못 보고 <마녀사냥>도 한참 남아서 모두들 강추하는 <별그대>를 못 보고 있는데, 나의 냄비 정신 덕분에 블로그에 모든 자투리 시간을 할애하는 중이다. 생각할수록 블로그란 게 참 매력적이긴 하지. 맘을 먹고 포스팅하려고 한다면 못할 소재가 없다. 이제 곧 자야지.



덧글

  • NARI 2014/02/04 08:10 # 삭제 답글

    ^^ 근황 잘 읽고가여 그럼여 진리져 아이브로우는 진뤼, 아이브로우를 안하면 최소한 안경이라도 껴서 시선을 분산시킬것
  • 마나님 2014/02/05 03:56 #

    그럼 그럼 이 일기의 주제는 아이브로우의 중요성이고 말고..ㅋㅋㅋㅋㅋ 아 네 눈썹 생각난다 나리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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